시사출을 하러 가면 보통 조건을 잡아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대개 전문가 포스가 물씬 풍기죠. 그분을 믿고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하다 보면, 허우적대다가 끝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분들을 탓할 일은 아닙니다. 시험사출은 시간이 곧 돈이거든요. 정해진 시간 안에 빠르게 찍고 다음 금형을 올려서 생산을 해야 수지 타산이 맞습니다. 그래서 대충 잡고 끝나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날 잘 나온 부품 하나를 들고 나오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요.
보압을 올리면 따라오는 것들
외관에 싱크가 안 잡힌다고 해봅시다. 싱크를 잡는 방법은 참 다양하죠. 보압을 더 넣어보고, 보압 시간을 늘려보고, 쿠션을 조절해보고. 대부분 여기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중량이 올라갑니다. 도면 중량보다 높아지는 경우도 많고요. 중량이 도면을 넘어가면 그건 그것대로 설명해야 할 일이 됩니다. 거기서 더 밀어 넣으면 금형이 벌어져서 플래시가 생깁니다. 버가 나오는 거죠.
싱크 하나 잡으려다가 중량 초과와 버를 새로 얻는 겁니다. 그리고 이 둘은 싱크보다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싱크는 안 보이는 면이면 넘어갈 여지라도 있지만, 중량과 버는 숫자와 형상으로 남습니다.
조건으로 맞춘 외관은 양산에서 안 버팁니다
조건으로 겨우겨우, 어떻게 해서 외관이 잘 나오는 부품을 사출했다고 칩시다. 그날은 넘어갑니다. 넘어가는 게 문제죠.
양산 때는 그 조건이 유지가 불가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지 로트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어 금형온도가 달라지고, 금형에 이물이 끼고, 사출기가 바뀝니다. 시사출 날 딱 맞춰놓은 좁은 공정창은 그중 하나만 흔들려도 무너집니다.
애초에 공정창이 좁다는 게 신호입니다. 보압을 조금만 낮춰도 싱크가 나고 조금만 올려도 버가 난다면, 그 사이 어딘가에 조건을 세워놓은 겁니다. 그 폭이 손가락 하나만큼이면 양산은 못 버팁니다.
결국 수면 위로 올라올 문제들이었던 겁니다.
눈가리기로 조건 잡는 분을 달달 볶아서 열심히 잡았다고 칩시다. 몇 달 뒤에 갑자기 연락이 옵니다. 품질팀에서 외관을 잡고 통과를 안 시켜주죠.
그래서 결국 금형을 엽니다
그때부터는 순서가 없습니다. 금형을 열어서 금형 외관에는 문제가 없는지 보고, 분해를 다 해서 작동 코어들이 스무스하게 움직이는지 하나씩 차근차근 살펴보게 됩니다.
코어가 뻑뻑하게 움직이거나 한쪽만 닳아 있으면 그게 답인 경우가 있습니다. 파팅면에 광이 나는 자리가 있으면 거기만 눌리고 있었다는 뜻이고요. 냉각 라인이 막혀 있으면 그 부위만 늦게 식습니다.
진작에 했으면 될 일을, 몇 달 치 양산과 품질팀 회의를 거친 다음에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금형은 이미 몇만 쇼트를 더 찍은 뒤라 원래 상태가 어땠는지도 알기 어려워집니다.
이론적으로는 나면 안 되는데 난다면
물론 싱크는 설계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살두께가 두꺼운 보스나 리브 교차부는 원래 수축이 큽니다. 근데 설계는 맞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결국 남는 건 이런 것들입니다.
- 사출기의 압 자체가 모자랐을 수 있습니다. 형체력만 보고 사출압을 안 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금형에 맞는 기계인지부터 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 금형 습합이 잘 안 맞습니다. 파팅면이 제대로 닿지 않으면 압이 새고, 새는 만큼 안 채워집니다. 버가 나오는 자리 근처에서 싱크가 같이 나오면 이걸 의심합니다.
- 성형 밸런스 문제로 압 전달이 안 됩니다. 다캐비티에서 캐비티별로 채워지는 속도가 다르면 어느 하나는 항상 부족합니다. 러너 밸런스가 안 맞으면 조건을 어디에 맞춰도 나머지가 틀어집니다.
- 게이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게이트가 두꺼운 부위에서 멀거나 작으면, 보압이 도달하기 전에 게이트가 얼어버립니다. 그 뒤로는 보압을 아무리 올려도 그 부위에는 전달이 안 됩니다.
마지막 항목이 보압을 올려도 싱크가 안 잡히는 가장 흔한 이유입니다. 압을 넣고 있는데 길이 막혀 있으니, 압은 다른 데서만 세지고 정작 필요한 곳에는 안 갑니다. 중량이 올라가고 버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넣은 압이 엉뚱한 데로 가는 거죠.
그래서 어디까지 조건으로 보나
조건을 만지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조건은 원인을 찾는 가장 빠른 도구이기도 합니다. 보압을 올렸을 때 반응이 있는지를 보는 식으로 갈라볼 때가 있습니다.
올렸는데 싱크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 압 전달 경로는 살아 있는 겁니다. 그러면 조건 범위 안에서 답이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올렸는데 싱크는 그대로고 중량과 버만 늘면, 그건 조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이때 더 올리는 건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문제를 옮기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딱 갈리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애매하게 조금 줄어드는데 중량도 같이 오르는, 판단이 안 서는 구간이 제일 많죠. 그래도 이 구분을 한 번이라도 해보고 넘어가는 것과 그냥 올리는 것은 다릅니다. 최소한 금형을 열어야 한다는 판단을 몇 달 앞당길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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